법 좋아하면 법으로 망한다.

유성옥칼럼 | 기사입력 2020/06/13 [20:10]

법 좋아하면 법으로 망한다.

유성옥칼럼 | 입력 : 2020/06/13 [20:10]

 

▲ 유성옥 칼럼 

얼마나 위험하고 섬뜩한 현실인가. 히틀러의 만행이 당시에는 모두 합법이었음을 잊지 맙시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다. 1940년대 당시 독일은 유대인들을 죽이기 위해서 안락사에 대한 법률을 만들었다. 집시-중환자-동성애자들을 가스실에서 먼저 안락사 시킨 뒤에 600만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학살했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은 이유다. 군인들은 마땅히 지켜야 할 법을 지킨 것뿐이다.

 

이렇듯 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가 되는 형식적 법치주의 아래서는 합법적인 수많은 범죄가 양산될 수 있는 것이다. 두루 아는 바와 같이, 법은 독재자가 정적을 골목에서 제거하기 위해 만들기도 하고, 정적을 법원에서 형식적 절차에 의해 사형시키려는 독재자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했다. 목하 진보의 투쟁 행태를 한마디로 말하면 개혁은 곧 법률제정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새로운 법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법치주의 국가다. 법이 개인을 보호하며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 법은 안전과 평화를 담보한다. 그래서 법치주의국가의 개인은 법에 맹종한다.

 

제정한 법률의 명칭보다 법률의 기원이 된 사람의 이름이 법률명으로 통용되기를 바라는 것은 개혁의 변곡점을 기념하려는 일부 국민들의 뜻이다. 사람 이름 법률명은, 특정한 사건을 낳은 불안한 현장이 포착된 이래 법률이라는 안전장치 마련을 위해 투쟁한 일부 국민들 자신의 승전을 기록한 기념비와도 같다. 이는 개혁의지를 지속적으로 촉진하는 진보의 깃발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특정 사회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진보 네트워크의 산물이다. 문제에 몰입하고 이슈화하고 확장시키고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진보의 개혁방식이다. 정권에게 법은 지배이념이며 수단이다. 어떤 법은 진영의 정체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진영 간에 그런 인식이 팽배하다. 선거법개정이다 공수처법제정이다 등을 놓고 진영 간 죽기 살기로 충돌하는 이유다. 그 앞에서는 민생문제 같은 것이 우선순위를 다투지 못한다. 시대의 방향타가 되는 법률, 혹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개혁법안이 진영 간 합의에 의해 제정되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새로운 지표로 세운 법이란 진영 간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확보한 일방이 쟁취한 산물인 것이다. 내용이 어떻든 법이란 우리가 알고 있고 원하는 바와 같이 실질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 아니다.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는데 그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형식적 법치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

 

누구나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 사실은 이렇게 불완전한 것이다. 그렇다면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법은 불완전하지 않은가. 결코 그러하지 아니하다. 법률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인들의 의견이 충돌하고 개입하여 누더기법이 된 사례가 이 나라에는 수두룩하다. 선거법, 양도세법, 청탁방지법 등은 비근한 예다. 이밖에 사회적인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누더기 법들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법은 추상같이 집행되고 그 법에 의한 피해자는 속출하고 있다. 억울한 자는 어디에다 하소연 할 것인가 법이 그러한데. 법 좋아하면 법으로 망한다는 게 진리다.

 

보수진영이 수적 우위를 점하고 정권을 탈환하면 공수처법을 그대로 놔두겠는가? 폐지하거나 최소한 무용화시키지 않겠는가? 검-경 수사권 조정은 유지되겠는가? 합의되지 않은 법률의 운명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법부터 만들자고 주장하는 태도는 형식적 법치주의를 맹신하는 발로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는 오늘이다. 무슨 문제든지 법을 잣대로 들이대며 왈가왈부하는 공중파 카메라 앞의 논객들에게 극심한 피로를 느낀다. 이 나라는 법 없이 못사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법 없어도 사는 사람들의 설자리는 자꾸만 좁아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오늘이다.

 

공수처법을 필두로 한 사법개혁 노정에서 맞선 추미애와 윤석열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윤석열 검찰총장 휘하의 검사들은 현 정권의 핵심인물이자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조국일가를 초토화시켰다. 언론 자유 침해에 대해선 깊이 고려할 여지가 있다. 언론의 자유가 침해 안 되도록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는 부적절하고 모호한 법을 수정하여 완전하게 만드는 것조차 힘이 부치는 실정이다. 우리는 이미 짊어지고 있는 법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결단코 법이 부족해서 이 나라가 비정상에 떨어진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진보의 방향성 수정이 시급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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