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TV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저급하다.

이우근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6/29 [20:21]

현재 TV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저급하다.

이우근논설위원 | 입력 : 2020/06/29 [20:21]

▲이우근논설위원

필자는 요즘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TV 시사프로그램은 더더욱 그렇다. 이유는 딱 세 가지다. 하나는 상식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진실을 찾기 어렵고, 나머지 하나는 저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늘 상식적이거나, 늘 진실하거나 수준 높은 사람인 때문은 아니다. 평범한 범인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상식이 뭔지, 진실이 뭔지는 구분할 줄 알기 때문이다. 저급한지, 수준이 있는지도 개인에 따라 다르겠으나 적어도 내 기준에 의하면 현재 TV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저급하다.

 

특히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와 출연자의 수준은 종합편성채널이 생긴 후 창피한 수준이 되었다. 한 마디로 전파 낭비라는 소리를 넘어 공해라는 소리를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TV 뿐 아니라 소위 조-중-동 같은 신문에서도 정치면의 경우 상식과 진실에서 벗어난 내용도 많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셈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종합편성채널이 소비자의 채널 선택권과 수준 높은 고급 프로그램 필요성을 강조하며 방송시장에 뛰어든 후 걷잡을 수 없게 저널리즘의 사명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자극적, 폭력적 내용은 차라리 봐 줄만하다. 오락-연예 프로그램도 그렇다.

 

그런 프로그램은 본디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고 시청률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인정한다 치자. 시사프로그램과 뉴스는 전파라는 사회적 공기가 진실의 창 역할을 해야 한다는 본래의 사명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기 때문에 상식, 정의, 고급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수준 이하의 진행자와 토론자가 나와 거짓과 왜곡과 분열적인 억지 주장만 늘어놓고 끝나는 것이 다반사니 걱정이 태산이다. 문제는 이런 방송이 국민을 세뇌시켜 정신을 병들게 하고 진실과 상식과 정의라는 가치를 훼손한다는데 있다.

 

먹고 살기 바쁜 국민들이 정치, 사회적 이슈를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송출되는 왜곡보도와 거짓 주장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면서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시각에서 치명적이다. 독일 나치에 협조한 언론인들이 철저하게 단죄되었던 까닭은 정치,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악 영향이 엄청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방송과 신문의 제어 장치가 없다고 봐야 한다. 방송과 신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사주와 제작진의 건강성과 진실을 말하겠다는 언론인의 가치관, 사회적 사명이다. 그것이 분명 우선이다.

 

그런 능력을 상실하거나 사시가 되어 한쪽만 바라보는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현명한 판단과 선택이고, 정부의 상식적인 언론 정책이다. 안타깝게도 이 대목에서 언론인의 자정능력, 사주의 가치관, 언론 소비자인 국민들의 정치사회적 수용능력, 정부 당국과 정치권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언론 정책이 없다는데 있다. 언론과 관계된 공급자 집단과 수용자 집단 어느 누구도 제 몫을 할 능력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거대 방송과 신문은 자기통제능력도, 외부 견제 능력도 상실한 괴물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를 가리켜 나는 중병을 앓는 사회라고 본다.

 

예를 들어 남북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직면해 있는데 방송과 신문은 평화를 말하지 않고 분열과 대결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 보도만 일삼고 있다. 평화를 말해도 시원찮은 판에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키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하루아침에 한반도 전역이 쑥대밭이 되고 불바다가 되는 처참한 전쟁의 참상을 모르는 바 아닐 텐데, 대결 국면 조장을 통해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지 일반 국민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대단한 불행이다. 진실과 상식과 정의가 필요한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깨어있지 못하다.

 

80~90년대를 관통한 비판적 정치의식과 사회의식도 사라진 마당에 희망과 평화를 노래할 집단이 없다는 이 불행한 현실을 뚫고 나올 힘이 없다. 그 역할을 해야 할 방송·신문이 퇴행의 역사에 가담하고 있다. 국민들은 분별력을 잃어가고 있거나 이 지독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깨어 있어야 한다. 각성된 국민이 평화도 지키고 거짓을 가려 낼 수 있다.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의 거짓을 분별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 언론 공급자는 의도된 계획에 의거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교하고 치밀하게 접근한다. 때문에 언론 소비자인 국민은 비판적 수용능력으로 거짓과 진실을 가려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요즘 뉴스를 잘 보지 않는다. TV시사프로그램은 더더욱 그렇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그 뉴스와 토론자의 주장이 진실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고 왜곡된 프리즘이기 때문이다. 국민이 그것을 분별하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쓸 만한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이 나온다. 국민을 바보와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날까지 깨어있어야 한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패턴이 깨지고 반년이 그냥 지나가고 있다. 코로나야, 부탁이다 너 이제그만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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