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에 대한 심리 더 엄중해야 한다

이우근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8/30 [20:16]

명예훼손에 대한 심리 더 엄중해야 한다

이우근논설위원 | 입력 : 2020/08/30 [20:16]

▲ 이우근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7일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고 전 이사장은 2013년 1월 한 보수단체 연설에서 당시 민주당 18대 대선후보였던 문 대통령을 가리켜 부림사건 변호인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발언했다.

 

그 누군가에 의해  500만 호남인들의 핏속에 새겨져 수십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는 저주받은 낙인을 만들었다. 반세기가 넘게 남북으로 갈라진 체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 이 좁은 땅에서, 이 저주받은 낙인을 새긴 자들에 의해 또다시 동서로 갈라져 서로를 미워하고 있는 오늘 여러분에게 누가, 왜, 언제부터 도대체 무슨 의도로 호남인들에게 빨갱이라는 저주의 낙인을 찍었는지, 또, 그로인해 우리 민중들의 가슴에 속에 잉태된 증오의 씨앗을 그들이 어떻게 이용했는지 알아야 한다. 발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꽉 들어찬 유세장 곳곳에서 김대중의 연설을 들은 부산시민들의 감탄사가 이 곳 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아이고 와, 우리 경상도에는 김대중이 같은 인물이 없노, 전라도에서 대통령감 났다. 아마 여러분들은 김대중에 대해서 부산시민들이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40대 기수론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신민당 김대중후보의 인기는 부산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가히 열풍 이라고 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69년부터 박정희는 3선개헌을 통해 종신대통령을 획책했다. 이에 대한 재야와 언론의 반대, 학생운동은 거세게 일어났다. 70년 11월에 열악한 노동현장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며 전태일 청년의 분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민심은 이미 박정희에게서 등을 돌리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마음이 김대중 후보의 등장과 함께 현실로 다가왔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의 지지율이 엇비슷하거나 김대중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상황에 이르자 박정희와 공화당 그리고 매국언론들은 삼위일체가 되어 영남인의 가슴속에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망언을 공공연하게 유포하기 시작했다.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거짓된 비열한 낭설을 영남 전역에 퍼뜨리면서 드디어 1971년 제 7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게 된다. 그 결과는 94만표 차이로 박정희가 이겼지만 실질적으로 신민당 김대중후보의 승리 였다.

 

당시 야당 선거 참관인이 경상도에서 협박과 수작에 발이 묶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공연하게 선거조작이 이루어졌고 또 이른바 피아노표, 손에 먹을 묻히고 투표용지를 더럽혀서 무효표로 만든것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60만 군대의 표가 자동으로 박정희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94만표차이 라는 것은 박정희에게서 민심이 떠났음을 의미했다. 이는 박정희가 유신을 시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박정희의 왕국에서 가장 큰 위협 인물이 되어버린 김대중은 여러차례 죽음의 고비를 맞이했었다. 이때 유신정권의 암살시도에서 살아남은 김대중은 빨갱이 라는 저주받은 낙인을 부여 받는다.

 

덧붙여 전라도도 빨갱이소굴 이라는 특별자치구의 명칭까지 부여받았다. 이 후 부터 김대중의 고난과 호남인에 대한 편견이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후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서울의 봄, 그 짦은 시간 이후에 우리 민중들은 또 다시 권력을 쟁취하지 못하고, 또 다시 신군부 세력에게 민주주의를 억압당하게 된다. 5/16쿠데타의 후계자들 답게 이들 또한 그들의 선배가 사용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 했다. 또 다시 김대중과 호남인을 빨갱이로 만들고 전라도를 빨갱이 소굴로 만들었다. 부림사건은 잘 알려진 대로 전두환 군사정권이 1981년 부산지역 교사와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엮었던 대표적 공안사건이다.

 

2013년에는 변호인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1100만 관객을 모았을 만큼 국민의 관심도 뜨거웠다. 영화처럼 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 사건의 변호를 맡은 뒤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부림사건은 2014년 재심 끝에 무죄로 결론이 났으며, 당시 피해자들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명예훼손에 대한 더 엄정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부림사건이 사실상 조작된 공안사건이라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는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할 대목이다. 시간이 지나서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최소한 도덕적 책임까지는 면할 수 없는 일이다.

 

당시 수사검사가 고영주 전 이사장이었다면 문제는 더 명확해진다. 반성하고 사과부터 할 일이었다. 그러나 고영주 전 이사장은 달랐다. 당시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문재인 대통령을 가리켜 공산주의자라고 노골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한국정치에서 특히 이념 대결이 펼쳐지는 정치현장에서 공산주의자나 빨갱이를 거론하며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얼마나 저급한 정치공세인지 고 이사장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한국전쟁과 분단의 역사가 만들어 낸 저주와 경멸, 음모와 편향의 총체적 이미지가 그대로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심은 명예훼손이 아니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사실 이보다 더 악의적이고 인격적 모멸감을 주는 명예훼손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을 만큼 1심 재판부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고영주 전 이사장 본인이 이 사건의 담당 검사였다는 점에서 다분히 고의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명예훼손에 대한 엄정한 결론을 내린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항소심은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으며, 표현의 자유 안에서 이뤄진 적법한 내용이 아니라고 했다. 만시지탄이다. 최근 주변에도 상대를 향한 저급한 음모와 비방이 넘쳐나고 있다. 표현의 자유만 언급할 계제가 아니다. 이번 항소심 판결을 계기로 명예훼손에 대한 더 엄정한 기준이 확립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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