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만 있고 정책은 없다. 경북은 지금 ‘따뜻한 물’ 속에 있다

이우근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6/04/20 [08:17]

공천만 있고 정책은 없다. 경북은 지금 ‘따뜻한 물’ 속에 있다

이우근논설위원 | 입력 : 2026/04/20 [08:17]

▲ 이우근논설위원     

6/3 지방선거를 앞둔 경북 정치의 풍경은 낯설지 않다. 누가 공천을 받았는지, 누가 탈락했는지, 누가 무소속으로 나서는지가 연일 뉴스의 중심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 “그래서 경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답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지금 경북 선거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공천 경쟁으로 흘러가고 있다. 공천만 통과하면 당선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작동하는 구조에서, 후보들은 유권자보다 당을 향해 말하고 있다. 그 결과 선거는 설계가 아니라 줄 세우기로, 비전이 아니라 유불리 계산으로 전락하고 있다.

 

문제는 이 구조가 경북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북은 지금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인구는 줄고, 산업은 정체되고, 청년은 떠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잘 살게 하겠다”는 식의 선언은 의미가 없다.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숫자와 일정이 있는 정책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에너지 산업 재편이다. 울진을 비롯한 동해안은 대한민국 원전 산업의 핵심 거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발전소만 있을 뿐, 산업과 일자리는 지역에 남지 않는다. 정비·부품·연구 산업을 지역에 묶어내는 클러스터 전략 없이 “지원금을 늘리겠다”는 공약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어느 기업을 유치할 것인지, 어떤 세제와 인프라를 제공할 것인지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산림과 토지 규제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다. 경북의 산림은 자산이 아니라 ‘묶인 재산’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동일한 법 체계 안에서도 타 지역에서는 가능한 사업이 경북에서는 막히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의 문제다. “검토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언제 어떤 조례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까지 나와야 정책이다. 지방 소멸 대응도 마찬가지다. 청년 유입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일자리, 주거, 교육이 함께 설계된 정주 정책이 있어야 한다.

 

“왜 이 지역에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없는 공약은 설득력이 없다. 농어촌 정책 역시 보호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원과 보전만으로는 미래가 없다. 스마트 농업, 가공 산업, 유통 혁신이 결합된 구조로 전환하지 않으면 지역 경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농민을 돕겠다”는 말보다, 어떻게 산업을 바꿀 것인지가 핵심이다. 재정 문제도 짚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행사와 단기 성과 중심의 예산 집행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모든 사업은 비용 대비 효과로 평가되어야 하며, “얼마를 썼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남겼는가”로 판단해야 한다. 재정은 정치의 수단이 아니라 주민 삶의 도구다.

 

그런데 지금 선거판에서 이런 이야기들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공천 논란만 남았다. 기준이 흔들렸느냐, 절차가 공정했느냐를 놓고 싸우는 사이, 정작 정책은 사라졌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비유를 떠올릴 수 있다. ‘따뜻한 물 속의 개구리’ 이야기다. 냄비속에서 처음에는 편안한 온도에 안주하다가, 서서히 올라가는 온도를 느끼지 못한 채 결국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 변화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의 경북이 그와 닮아 있다. 당장 큰 불편이 없다는 이유로, 익숙한 구조에 머물러 있는 사이 지역의 경쟁력은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

 

공천만 통과하면 된다는 정치, 구호만 반복하는 선거, 실행 없는 약속들이 쌓이면서 경북은 서서히 정체의 길로 들어가고 있다. 이제 질문은 단순해져야 한다. “그 공약, 언제까지, 얼마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후보는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후보에게 지역의 미래를 맡기는 순간, 경북은 다시 한 번 같은 자리에 머물게 된다. 공천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거는 사람을 고르는 과정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금 경북은 따뜻한 물 속에 있다. 편안함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뛰어 나올 것인가. 그 선택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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